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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 보고서

해외 출장보고서

중국과의 법제교류 후기(2006년)
  • 작성일 2007.03.05.
  • 조회수 1324
  • 중국과의 법제교류 현장에서

    2006년 11월 8일 김선욱 처장님을 비롯한 방문단 일행은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법제판공실의 조강태(曹康泰) 주임의 초청에 따른 5박6일의 공식적 중국방문일정을 위해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오전 10시 40분 인천발 북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는 약 1시간 반 후에 현지시각으로 11시 50분쯤 북경공항에 착륙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북경의 거리를 뿌옇게 뒤덮었다는 황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고, 날씨도 쾌청해서 중국에 대한 첫인상은 상쾌하게 다가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오신 황정일 공사와 박흥식 법무협력관, 그리고 중국 국무원 법제판공실의 오호(吳浩) 외사사장과 송수아(宋秀娥) 외사처장 여러 분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바로 귀빈실로 안내했다. 정중한 환영사와 답사가 있었고, 이어서 우리 일행은 곧바로 숙소인 귀빈루(貴賓樓) 호텔(Grand Hotel Beijing)로 출발했다. 당시 약 48개국의 정상과 고위관리들이 참가한 중국-아프리카 협력 포럼이 며칠 전에 폐막했는데, 잔류한 일부 아프리카 정상들의 귀국 행사로 공항이 매우 북적거렸던 기억이 난다.

      귀빈루 호텔은 천안문 광장 바로 옆에 있었는데, 호텔방 창가에서는 자금성의 담벼락과 나무들이 보였다. 중국에 있는 동안 우리에게 배정된 숙소는 항상 8층 아니면 8동에 있었다. 이는 아무래도 중국 사람들이 8자를 좋아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호텔에서 잠시 쉬면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점심식사한 후, 오후에 있을 중국 법제판공실과의 회담을 위한 준비회의를 간략하게 마치고, 국무원 법제판공실과의 회담장소인 인민대회당으로 출발했다. 인민대회당은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에 해당되는 장소로서 천안문광장 건너편에 있었다. “國法”(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국무원 법제판공실을 줄인 말이다)이라는 두 글자가 굵게 새겨진 표지를 단 승합차를 타고 자금성문에 걸려 있는 모택동의 대형사진을 지나치자마자 지붕 위에서 병정들처럼 일렬종대로 늘어선 수십 개의 붉은 깃발들이 물결치며 펄럭이는 커다란 석조건물이 나타났는데, 바로 인민대회당이었다.

      인민대회당에는 중국의 23개 성(대만을 포함한 수임)의 숫자에 맞추어 23개의 회의실이 있는데, 각 성에서 회의실을 그 성의 특색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꾸민다고 한다. 이 회의실들은 전국인민대표대회 때 각 성의 대표들이 모여 의논을 하는 장소라고 한다. 국무원 법제판공실과의 회담은 그런 회의실 중 하나인 산동실에서 이루어졌다.

      법제판공실의 환영은 매우 정중했다. 법제처에서 약 한 달 전에 여러 법제 분야와 관련 70여개의 질문을 만들어 미리 법제판공실에 보냈었는데, 법제판공실에서 그에 대한 답변을 자료집으로 만들어 준비해 주었다. 인사말과 소개에 이어 조강태 주임의 중국법제에 대한 짧지 않은 설명이 있었고, 이어서 약 2시간 반 동안 한중간의 법제 교류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각 관심사에 대한 질문과 답변의 시간을 가졌다.

      그 후 우리나라 법제처와 중국 법제판공실의 합의문(대한민국 법제처와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법제판공실 간의 ‘법제 교류·협력 회담 비망록’) 조인식이 이어졌다. 법제처와 중국 측이 미리 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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